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르베르 대항거 (문단 편집) === 차별과 과세 === [[마왈리]], 즉 개종자는 우마이야 왕조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특히 8세기 초엽, 왈리드 1세와 술레이만 시기부터 차별이 보편화 되었다. 이후 [[우마르 2세]] (717 ~ 720년)가 개종자들에게 부당하게 (샤리아에 맞지 않게) 부과되던 세금들 (인두세, 토지세, 노예세)을 폐지해 주었다. 718년에 이프리키야 총독으로 부임한 이스마일은 해당 칙령을 제대로 실행하여 베르베르 민심을 달래었다. 하지만 720년에 그의 후임으로 부임한 총독 야지드 이븐 무슬림은 베르베르 개종자들에게 인두세 (지즈야)를 부과하며 원성을 샀고 그러다 이듬해에 암살되었다. 이후 칼리파 히샴 (724 ~ 743년)은 하자르 칸국, 동로마 제국, 소그드 인들과 싸우기 위해 개종자들에 대한 토지세 부과를 부활시켰다. 그러한 번복 조치는 동쪽으론 이란인 개종자들, 서쪽으론 베르베르인 개종자들의 분노를 일으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